경북 포항지역 나환자와 고아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천주교 신부와 수녀 74인이 묻힌 포항 천주교 묘역이 포항시 공원개발사업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포항 천주교 성지로 불리는 이 묘역은 지난 1972년 예수성심시녀회(포항 수녀원) 창립자 프랑스인 루이델랑드 신부가 선종하면서, 당시 이 땅 소유자인 포스코로부터 사들여 조성됐다. 이곳에는 루이 신부와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수녀원 수녀들도 함께 묻혀 있다.

1923년 한국 선교사로 온 루이 신부는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활동하다, 1940년 수녀 6명과 함께 수녀원을 시작해 무의탁 노인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성모자애원을 설립했다. 이후 1950년 포항으로 이주해 수녀원과 자애원을 운영해왔다.

이들은 피부과무료진료소를 설치해 나환자 치료에 힘썼고, 베다니 마을을 설립해 나환자 정착을 도왔다.

루이 신부는 1965년 은퇴 후에도 포항 오천 갈평에서 가난한 이웃과 아이들을 돕다가 1972년 선종했다. 루이 신부는 포항을 빛낸 인물 제6호에 선정되기도 했다. 루이 신부와 수녀들의 희생정신은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재단법인 포항성모병원과 사회복지법인 포항성모자애원을 통해 포항사회에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루이 신부를 포함해 74인의 신부와 수녀가 묻힌 묘역이 사라질 위기다. 포항시가 공원일몰제를 앞두고 추진한 양학공원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이 묘역과 수녀원에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마련한 포도밭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포함된 묘지와 포도밭 면적은 3천여 평이다. 포항시는 최근 양학근린공원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시행자를 선정하고, 이 사업에 따른 대잠동 산70-2번지 일원 94만여㎡에 대한 지적측량, 토지 및 지장물 조사, 감정평가 등을 위해 토지 등 출입을 수녀원에 통보한 상태다.

예수성심시녀회 측은 “포항지역을 위해 애쓰며 살아온 분들이 묻힌 묘역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인데 묘역은 남겨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포항의 한 시민은 “포항지역 사회를 위해 지대한 공헌과 희생정신이 있는 순교자적 삶을 살아온 분이 묻힌 묘지를 파헤치면 세간에 비웃음을 살 것”이라며 “지역사회 성지나 진배없는 천주교 수녀원 묘역을 지역 종교사적으로 잘 보존해 후대에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민간공원조성사업을 추진 중인 포항시 공원과 관계자는 “수녀회 측의 민원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며 “묘역에 대한 여러 가지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