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방북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지나 하스펠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 제공 새해 첫날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말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 다음 날 트위터에서 “나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단추가 있다. 작동도 한다”고 맞받아쳤다.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핵단추’ 설전을 벌이며 벼랑 끝 전술을 펼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9일 북미 대화에 나서기로 급선회했다. 일각에서는 그간 북미의 신경전이 사실상 회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샅바 싸움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두 사람이 벌였던 말 폭탄 설전은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까지 정세를 악화시켰다. 북한은 지난해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호’를 시험발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계속 ‘폭풍 전 고요’ ‘단 한 가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표현을 쓰며 북한에 대한 대화 무용론과 군사옵션 가능성을 흘렸으며, 대북 선제타격론, 예방타격론도 제기했다. 북한의 “괌 주변 포위사격 검토” 발언은 군사적 갈등을 고조시켰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칭하며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도 ‘노망 난 늙은이’ ‘불망나니’ ‘깡패’ 등의 표현을 써가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늙다리’ ‘전쟁 미치광이’ ‘테러 왕초’ 등으로 불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에게 ‘작고 뚱뚱하다’고 하지 않는데 그는 왜 나를 ‘늙었다’고 모욕하는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을 ‘정신병자’라는 의미에서 ‘병든 강아지’로 지칭하는 등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했던 두 사람이 극적으로 대화 테이블에 나서기로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마찬가지로 대응해온 게 결국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기질도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안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기질이 닮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폭탄발언을 주고받으며 접점을 찾지 못하던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외교를 펼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가 북미 대화를 유도했다는 평가다. 대북특별사절단으로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한국의 판단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북미 대화 제의를 수락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11차례에 걸친 전화통화와 세 차례 한미 정상회담을 이어가며 북미 대화에 나설 것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이 같은 노력에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가 추가되면서 남북 대화는 물론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